와인을 오래 세워 두었다가 따를 때, 잔 바닥이나 코르크 밑면에 유리 조각 같은 결정이 붙어 나오는 일이 있습니다. 상한 것 같아 버리는 분이 많지만 이는 주석산이 만든 자연스러운 결정입니다. 같은 물질이 와인 라벨에서는 ‘L-주석산(산도조절제)’으로, 제과 재료에서는 ‘크림 오브 타르타르’라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하나의 성분이 왜 이렇게 여러 얼굴을 갖는지 정리했습니다.
목차
주석산은 어떤 물질인가
주석산은 포도를 대표하는 유기산입니다. 포도 외에 바나나·타마린드·감귤류에도 들어 있지만, 함량과 존재감에서는 포도가 압도적입니다. 무색투명한 결정이거나 흰색 결정성 분말이며, 냄새는 없고 신맛이 매우 강합니다.
유기산 중에서도 신맛의 강도가 높은 축에 속해, 흔히 구연산보다 1.2~1.3배가량 신 것으로 소개됩니다. 그래서 같은 신맛을 내는 데 필요한 양이 적고, 신맛의 인상도 더 날카롭고 단단하게 느껴집니다. 공기 중에서 비교적 안정적이며 물에 잘 녹습니다.
식품첨가물공전에 오른 명칭은 L-주석산이며, 유럽에서는 E334 번호로 관리됩니다. 국내 라벨에서는 이름 그대로 적히기도 하지만, 대개는 산도조절제라는 용도명으로만 표시됩니다.
와인 바닥의 결정은 무엇인가
와인에 든 주석산은 포도에 함께 들어 있는 칼륨·칼슘과 결합해 물에 잘 녹지 않는 염을 만듭니다. 이 염이 시간이 지나면서 눈에 보이는 결정으로 자라난 것이 주석 결정입니다. 반짝이는 모양 때문에 ‘와인 다이아몬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결정이 생기는 조건은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 낮은 온도에서 오래 보관한 경우(대략 5℃ 이하에서 잘 생깁니다)
- 운반 중 진동이나 충격을 받은 경우
- 여과를 최소화해 만든 와인인 경우
화이트 와인에서는 투명하거나 흰 결정으로, 레드 와인에서는 색소가 함께 붙어 붉은 결정으로 보입니다. 변질이나 불량이 아니며 인체에 해롭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물질로 오해하는 소비자가 많아, 상당수 생산자는 출고 전에 와인을 낮은 온도로 안정화해 결정을 미리 석출시키고 걸러 냅니다. 결정이 남아 있다는 것은 오히려 처리를 덜 한 와인이라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크림 오브 타르타르와 같은 물질인가
제과 재료 코너에서 파는 크림 오브 타르타르는 정확히 말하면 주석산 자체가 아니라 그 칼륨염, 즉 주석산수소칼륨입니다. 와인을 만들 때 통 안쪽에 앉는 침전물을 정제해서 얻습니다. 방금 본 ‘와인 다이아몬드’와 뿌리가 같은 물질인 셈입니다.
제과제빵에서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머랭과 휘핑을 안정시킨다
달걀흰자를 거품 낼 때 소량 넣으면 거품 구조가 단단해지고 잘 꺼지지 않습니다. 머랭 레시피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2. 베이킹파우더의 산성 성분이 된다
베이킹파우더는 알칼리 성분인 탄산수소나트륨과 산성 성분이 짝을 이뤄야 반응해 가스를 냅니다. 그 산성 쪽 자리를 주석산수소칼륨이 맡는 배합이 오래전부터 쓰여 왔습니다. 같은 자리에 피로인산나트륨 같은 인산염 계열을 쓰는 제품도 많습니다.
이 밖에 설탕이 다시 결정으로 굳는 것을 막아 캔디나 시럽의 질감을 매끄럽게 유지하는 데도 쓰입니다.
식품에서는 어디에 들어가나
| 식품 | 넣는 이유 |
|---|---|
| 와인·포도 가공품 | 포도 본래의 산미 보정, 산도 안정 |
| 캔디·젤리 | 강한 신맛 부여, 설탕 재결정 방지 |
| 청량음료·과즙음료 | 산도 조절과 향의 선명도 유지 |
| 베이킹파우더·머랭 | 산성제 역할, 거품 안정 |
| 잼·소스·통조림 | pH 조정과 색 유지 |
같은 산도조절제라도 성분마다 맡는 자리가 다릅니다. 오래 남는 신맛이 필요하면 사과산을, 부드럽고 발효된 신맛이 필요하면 젖산을, 가장 기본이 되는 상큼한 산미에는 구연산을 쓰는 식입니다.
사용 기준과 안전성
국내에서 L-주석산과 그 염류는 식품 제조·가공상 필요한 양만큼 사용하도록 관리됩니다. 특정 숫자로 상한을 못 박기보다,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량만 쓰라는 방식입니다. 실무에서는 청량음료나 과즙에 0.1~0.2% 수준, 과자류에 그보다 높은 비율까지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일섭취허용량(ADI)은 최근 크게 조정된 항목이라 눈여겨볼 만합니다.
| 평가 주체 | 시점 | ADI |
|---|---|---|
| JECFA | 1973년 설정·1977년 재확인 | 0~30mg/kg 체중/일(그룹) |
| 유럽 SCF | 1990년 | 30mg/kg 체중/일 |
| EFSA | 2020년 재평가 | 240mg/kg 체중/일(그룹) |
유럽식품안전청은 2020년 재평가에서 주석산과 그 염류(E334~E337, E354)의 그룹 ADI를 240mg/kg 체중/일로 상향했습니다. 사람에서의 실제 체내 노출이 동물시험보다 낮다는 점이 반영된 결과이며, 같은 평가에서 유럽 각 인구집단의 섭취량이 이 값을 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준이 완화됐다는 것은 새 자료로 볼 때 종전 기준이 지나치게 보수적이었다는 뜻입니다.
섭취한 주석산은 상당 부분 그대로 배설되거나 장내에서 분해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산 자체가 강하기 때문에 신맛이 센 제품을 오래 물고 있으면 치아 표면에 부담이 되고, 공복에 다량 섭취하면 속이 쓰릴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와인 결정이 생긴 와인은 버려야 하나요?
버리실 필요 없습니다. 맛과 안전성에 문제가 없습니다. 병을 세워 하루 정도 두었다가 결정이 가라앉은 뒤 조용히 따르시거나, 디캔팅하면 잔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크림 오브 타르타르가 없으면 무엇으로 대체하나요?
머랭 안정 목적이라면 레몬즙이나 식초 같은 산성 재료로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수분과 향이 함께 들어가므로 배합에 영향이 있습니다. 베이킹파우더의 산성제 역할을 대체하려는 경우라면 완제품 베이킹파우더를 쓰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주석’이라는 이름은 금속 주석과 관계있나요?
관계없습니다. 금속 원소 주석(Sn)과는 전혀 다른 물질이며, 포도주 통에 앉는 침전물을 가리키던 옛 이름에서 유래한 표기입니다.
천연인가요, 합성인가요?
포도에 원래 들어 있는 성분이고, 식품첨가물로 쓰는 제품도 상당 부분 와인 제조 부산물에서 회수해 정제합니다. 2018년 이후 국내 표시제도에서는 천연과 합성을 구분해 적지 않으므로 라벨로는 구분되지 않습니다.
영양제 이름에서 본 것 같은데 같은 성분인가요?
주석산이 다른 성분과 결합한 염 형태가 보충제 원료로 쓰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식품에 산도조절제로 들어가는 양과는 목적도 섭취량도 다르므로, 해당 제품의 표시된 섭취 방법을 따르셔야 합니다.
마무리
주석산은 포도에서 온 강한 신맛의 유기산이며, 와인 바닥의 결정과 제과용 크림 오브 타르타르가 모두 이 성분에서 비롯됩니다. 신맛이 강해 적은 양으로 산도를 잡을 수 있고, 2020년 유럽 재평가에서 허용 섭취량이 오히려 크게 상향될 만큼 안전성 자료가 축적된 첨가물입니다. 라벨에서 이름을 찾기 어렵다면 산도조절제 표시 규칙을 먼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공식 기준은 다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식품안전나라 — https://www.foodsafetykorea.go.kr/
- 식품의약품안전처 — https://www.mfds.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