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로 된 식품의 원재료명을 보면 ‘이산화규소’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름이 비슷한 ‘이산화티타늄’은 유럽에서 식품 사용이 금지된 성분입니다. 둘은 어떤 관계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름만 닮았고 하는 일도 평가도 다릅니다. 식품안전나라 품목제조보고 자료에서 두 성분을 원재료로 신고한 품목을 전량 내려받아 비교했습니다.
목차
이름만 비슷하고 하는 일이 다릅니다
| 구분 | 이산화규소 | 이산화티타늄 |
|---|---|---|
| 주된 용도 | 고결방지제 — 가루가 뭉치지 않게 | 착색료 — 흰색을 냄 |
| 국제 번호 | E551 | E171 |
| 신고 품목 수 | 26,406건 | 1,985건 |
| 가장 많은 식품유형 | 복합조미식품(31.7%) | 당류가공품(29.0%) |
| 유럽연합 | 사용 허용 | 2022년부터 식품 사용 금지 |
신고 건수가 열세 배 넘게 차이 납니다. 이산화규소는 가루 식품 전반에 널리 쓰이고, 이산화티타늄은 흰 색을 내야 하는 특정 제품군에 몰려 있습니다. 이산화티타늄 쪽 이야기는 이산화티타늄 정리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어떤 식품에 들어 있나
이산화규소를 신고한 26,404건(필터가 어긋난 19건과 원재료명 파싱이 불가능한 2건 제외)을 식품유형별로 나눴습니다.
| 식품유형 | 품목 수 | 비율 |
|---|---|---|
| 복합조미식품 | 8,369 | 31.7% |
| 기타가공품 | 3,963 | 15.0% |
| 고형차 | 2,451 | 9.3% |
| 당류가공품 | 2,217 | 8.4% |
| 과·채가공품 | 2,118 | 8.0% |
| 음료베이스 | 1,524 | 5.8% |
| 캔디류 | 997 | 3.8% |
| 커피 | 329 | 1.2% |
목록을 보면 공통점이 뚜렷합니다. 전부 가루이거나 가루를 굳혀 만든 제품입니다. 복합조미식품(조미분말), 고형차(가루차), 음료베이스, 분말 커피가 그렇습니다. 습기를 만나면 뭉치고 굳는 제품군에 정확히 몰려 있습니다.
고결방지제가 하는 일이 이것입니다. 이산화규소 입자는 매우 작고 표면적이 넓어 가루 알갱이 사이에 끼어 수분을 붙잡고 서로 붙는 것을 막습니다. 스틱형 커피가 굳지 않고 흔들면 흘러내리는 데는 이런 성분이 관여합니다.
혼자 오지 않습니다
같은 자료에서 이산화규소와 함께 신고된 성분을 세어 보니, 비슷한 일을 하는 성분들이 나란히 나타났습니다.
| 함께 쓰인 성분 | 비율 | 하는 일 |
|---|---|---|
| 덱스트린 | 29.1% | 부피를 채우고 분말 상태를 유지 |
| 스테아린산마그네슘 | 27.9% | 가루가 잘 흐르게 하는 활택 작용 |
| 결정셀룰로스 | 10.3% | 부형·흡습 조절 |
| 제삼인산칼슘 | 8.8% | 고결방지 |
가루를 다루는 일에는 여러 성분이 함께 동원됩니다. 그래서 분말 제품의 원재료명은 길어지는데, 그 길이의 상당 부분은 맛이나 색이 아니라 ‘가루가 굳지 않고 잘 흐르게’ 하는 데 쓰입니다. 라벨이 길다는 것과 첨가물이 많이 들었다는 것이 늘 같은 뜻은 아닙니다.
액체 식품에는 거의 없습니다
고결방지제라는 이름이 뜻하는 바를 반대쪽에서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수집한 다른 식품유형에서 이산화규소를 찾아보면 이렇습니다.
| 식품유형 | 집계 건수 | 이산화규소 |
|---|---|---|
| 조미건어포 | 4,519건 | 6건 |
| 탄산음료 | 2,319건 | 3건 |
| 혼합간장 | 615건 | 1건 |
| 어묵 | 8,032건 | 0건 |
| 김치 | 20,901건 | 0건 |
| 과실주 | 1,481건 | 0건 |
합쳐서 3만 건이 넘는데 열 건에 그칩니다. 뭉칠 가루가 없으면 고결방지제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앞서 본 26,404건이 분말 제품군에 몰려 있던 것과 정확히 대칭입니다. 성분의 용도는 이렇게 ‘어디에 없는가’로도 확인됩니다.
이산화규소와 함께 등장한 성분들도 같은 맥락에서 읽힙니다. 덱스트린은 부피를 채우며 분말 상태를 유지하고, 글루탐산나트륨(18%)과 구연산(19%), 효소처리스테비아(16%)는 조미분말의 맛을 만듭니다. 복합조미식품이 이 성분의 최대 사용처인 이유가 성분 조합에 드러납니다.
몸에서는 어떻게 되나
이산화규소는 물이나 위산에 거의 녹지 않는 불용성 물질입니다. 그래서 먹어도 대부분 흡수되지 않고 그대로 배출됩니다. 알려진 흡수율은 섭취량의 1% 미만이며, 소량 흡수된 것은 체내에서 대사되지 않고 신장을 거쳐 소변으로 나갑니다.
식약처는 이산화규소를 고결방지제·거품제거제·여과보조제 용도로 허용하고 있으며, 일일섭취허용량(ADI)을 따로 정해 두지 않았습니다. 통상 사용량 수준에서 안전성 우려가 크지 않다고 평가된 성분에 적용되는 방식입니다.
유럽식품안전청은 2018년 재평가에서 이산화규소가 유전독성 우려를 제기하지 않으며 보고된 사용 수준에서 독성 징후가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다만 입자 크기 분포를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고, 2024년 후속 의견에서도 나노 크기 입자에 관한 독성 연구가 제한적이라는 불확실성을 함께 언급했습니다. 종합 결론은 ‘보고된 용도·수준에서 안전성 우려 없음’이지만, 규격을 정교화하는 흐름에 있는 성분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산화티타늄과 갈린 지점
두 성분의 평가가 갈린 이유는 무엇을 위해 쓰이고, 어떤 형태로 쓰이는가에 있습니다. 이산화티타늄은 흰색을 내기 위해 쓰이는데, 그 발색에는 작은 입자가 필요합니다. 유럽식품안전청은 2021년 평가에서 이 나노 크기 입자의 유전독성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유럽연합은 2022년부터 식품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이산화규소는 색을 내는 성분이 아니라 가루의 흐름을 돕는 성분이고, 흡수되지 않고 빠져나가는 특성이 평가에서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물론 나노 입자에 관한 불확실성은 이산화규소에도 남아 있습니다. 같은 ‘이산화’로 시작해도 규제 결론이 정반대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 집계에서 두 성분을 함께 신고한 제품은 281건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산화티타늄이 아직 허용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라벨에서는 이렇게 적힙니다
표기를 세어 보면 대부분 ‘이산화규소’ 그대로입니다(26,313건). 다만 몇 가지 변형이 있었습니다.
| 표기 | 품목 수 | 무엇인가 |
|---|---|---|
| 이산화규소 | 26,313 | 표준 표기 |
| 이산화규소1 · 이산화규소1.00 | 83 | 함량 숫자가 이름에 붙어버린 표기 |
| 이산화규소(첨185) | 5 | 첨가물 번호를 함께 적은 표기 |
| 싸이퍼넷22(이산화규소) | 4 | 제제 상품명과 함께 적은 표기 |
이산화티타늄 쪽에서는 ‘함성착색료(이산화티타늄)’처럼 오타가 그대로 남은 신고도 있었습니다. 정부 공개 데이터에도 사람이 입력한 흔적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성분을 찾으실 때는 정확한 이름 하나만으로는 놓칠 수 있습니다. 표기 문제 전반은 원재료명 표시 읽는 법에서 다룹니다.
자주 묻는 질문
이산화규소는 모래와 같은 물질인가요?
화학적으로는 같은 계열입니다. 모래와 석영의 주성분도 이산화규소입니다. 다만 식품에 쓰는 것은 규격에 맞게 정제·가공한 것이고, 입자 크기와 순도가 관리됩니다. ‘모래를 먹는다’는 표현은 성분명만 놓고 보면 그럴듯하지만 실제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영양제나 정제에도 들어 있는데 왜 그런가요?
가루를 눌러 정제로 만들 때 원료가 기계에 붙거나 뭉치면 무게와 모양이 일정해지지 않습니다. 이산화규소는 그 과정에서 가루가 잘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번 집계에서 스테아린산마그네슘(27.9%)이 함께 나타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유럽에서 금지된 성분이라고 들었는데요?
금지된 것은 이산화티타늄(E171)입니다. 이산화규소(E551)는 사용이 허용되어 있습니다. 이름이 비슷해 혼동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루가 뭉친 제품은 이 성분이 없다는 뜻인가요?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보관 습도와 포장 상태에 따라 달라지고, 애초에 뭉침이 문제되지 않는 제품에는 넣을 이유가 없습니다. 원재료명을 직접 확인하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데이터 출처와 재현 방법
원본은 식품안전나라 공공데이터 개방 서비스의 품목제조보고 자료입니다. 2026년 8월 17일에 원재료명 필터로 ‘이산화규소’ 26,425건과 ‘이산화티타늄’ 1,985건을 각각 전량 내려받았습니다. 이산화규소 쪽은 그중 19건이 실제로는 그 성분을 적지 않은 제품이어서, 위 표의 신고 품목 수는 이를 뺀 26,406건입니다.
이산화규소 쪽에서는 내려받은 26,425건 중 19건이 원재료명에 해당 성분명이 없었고(공개 데이터의 필터와 반환 값이 어긋난 경우), 원재료명 괄호가 닫히지 않아 항목 분리가 불가능한 2건이 있어 26,404건을 집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비율의 분모는 26,404이며, 성분별 수치는 해당 이름을 원재료명에 적은 제품의 수입니다. 사용량이 아니라 표기 여부를 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