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이란 무엇일까? 식품에 주정을 첨가하는 이유

빵 봉지나 김밥 도시락, 간장병 뒷면의 원재료명을 보다가 ‘주정’이라는 두 글자를 발견하고 멈칫한 적 있으실 겁니다. 술을 뜻하는 한자가 들어가 있으니 “왜 빵에 술을 넣지?” 하는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주정은 발효로 만든 순수한 에탄올이며, 술을 부어 넣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주정이 정확히 무엇이고, 식품 회사들이 굳이 이것을 넣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리해 드립니다.

주정이란 무엇일까?

주정(酒精)은 에틸알코올, 즉 에탄올을 가리키는 산업·법률 용어입니다. 주세법에서는 녹말이나 당분이 들어 있는 재료를 발효시켜 알코올분 85도 이상으로 증류한 것을 주정으로 정의합니다. 실제 시장에 유통되는 식용 주정은 순도 95% 안팎의 거의 순수한 에탄올입니다.

소주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릅니다. 희석식 소주는 이 주정에 물을 타고 감미료를 더해 만듭니다. 즉 주정은 술의 재료이지 술 그 자체가 아닙니다. 색도 없고 향도 거의 없으며, 알코올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만 납니다.

발효주정과 합성주정은 다릅니다

에탄올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이 둘은 용도가 완전히 갈립니다.

구분발효주정합성주정
원료쌀·보리·옥수수·타피오카·고구마·당밀 등석유·석탄에서 뽑은 에틸렌
제조 방식효모 발효 후 증류화학적 합성
용도주류·식품·의약품·화장품공업용 전용
식품 사용가능불가

식품 라벨에 적힌 주정은 전부 곡물이나 당류에서 발효로 만든 발효주정입니다. 석유에서 뽑아낸 합성주정은 애초에 식용으로 쓸 수 없습니다. “주정 = 화학 약품”이라는 오해가 여기서 비롯되는데, 사실은 정반대로 농산물을 발효시켜 만든 발효 산물에 가깝습니다.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발효주정의 제조 공정은 전통 술 빚기와 원리가 같습니다. 곡물을 잘게 부수고(분쇄), 물을 섞어 가열해 전분을 녹인 뒤(액화), 효소를 넣어 포도당으로 바꾸고(당화), 효모를 넣어 5일가량 발효시킵니다. 이때 나오는 알코올 농도는 5~10% 수준으로 막걸리와 비슷합니다. 이것을 연속식 증류탑으로 여러 번 증류해 불순물을 걷어내고 알코올 농도를 95% 이상으로 끌어올린 것이 바로 주정입니다.

참고로 국내에서 생산된 주정은 대한주정판매주식회사를 거쳐 전량 유통됩니다. 주정에는 주세가 걸려 있어 생산량·원료 배정·판매까지 국세청 관리를 받는, 상당히 통제가 엄격한 품목입니다.

식품에 주정을 첨가하는 이유

주정은 「식품첨가물의 기준 및 규격」에 올라 있는 품목인 동시에, 여러 가공식품의 원료로도 직접 쓰입니다. 식품 회사가 주정을 넣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됩니다.

1. 보존성을 높이는 살균 효과

가장 큰 이유입니다. 알코올은 미생물의 단백질을 변성시켜 증식을 억제합니다. 일반적으로 알코올 농도가 4% 이상이면 대부분의 부패 미생물이 자라지 못합니다. 여기에 산도를 낮추거나(식초·산미료) 소금·설탕 농도를 높이면 더 적은 양의 주정으로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빵·떡·면류·어묵·김밥처럼 수분이 많아 쉽게 상하는 식품에 소량의 주정을 씁니다. 합성 보존료를 쓰지 않고도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보존료 무첨가”를 내세우는 제품일수록 주정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잡내 제거와 풍미 증진

알코올은 휘발하면서 냄새 성분을 함께 끌고 날아갑니다. 고기의 누린내, 생선의 비린내가 맛술(미림)이나 청주로 잡히는 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동시에 알코올은 향기 성분을 잘 녹이는 용매라서, 조리 중 향이 재료 전체에 고르게 퍼지도록 돕습니다. 간장·맛술·조미료류에 주정이 들어가는 이유입니다.

3. 식감과 조직감 개선

면류에 소량 첨가하면 면발이 쉽게 불지 않고, 육류를 재울 때는 단백질을 부드럽게 만들어 연육 작용을 합니다. 냉동·냉장 유통 과정에서 조직이 퍼석해지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합니다.

4. 천연물 추출 용매

홍삼, 인삼, 프로폴리스, 각종 한약재의 유효 성분 중에는 물에 잘 녹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이런 성분은 에탄올로 우려내야 제대로 추출됩니다. 건강기능식품 원재료에 주정이 등장하는 것은 대부분 이 추출 용매 용도이며, 추출이 끝나면 대부분 증발·회수됩니다.

5. 발효 보조와 품질 안정화

양조식초를 만들 때는 초산균이 알코올을 먹고 초산을 뱉는데, 이때 주정이 초산균의 먹이가 됩니다. 곶감을 말릴 때 주정을 분무하면 곰팡이 발생을 억제하고 떫은맛을 줄이는 효과도 있습니다.

어떤 식품에 들어 있을까요

식품군대표 품목주된 목적
빵·떡류식빵, 카스텔라, 떡, 도넛곰팡이 억제, 노화 지연
즉석식품김밥, 도시락, 삼각김밥, 샌드위치부패 미생물 억제
장류·조미료간장, 고추장, 된장, 맛술보존성, 풍미
면류생면, 냉면, 우동퍼짐 방지, 보존
수산가공품어묵, 맛살, 젓갈비린내 제거, 보존
발효식품양조식초초산 발효 원료
건강식품홍삼·인삼 추출물유효 성분 추출

알코올이 남아 있는 걸까요

가장 궁금해하시는 부분입니다. 주정은 끓는점이 78도로 낮아 가열 공정을 거치면 상당 부분이 날아갑니다. 빵을 굽거나 국물을 끓이는 과정에서 대부분 증발하고, 남더라도 극히 미량입니다.

다만 가열하지 않는 식품(김밥, 샌드위치, 일부 떡류)에는 미량의 알코올이 남을 수 있습니다. 식품 유형별로 잔류 주정에 의한 품질 변화가 없도록 관리하라는 기준이 있을 만큼, 이 부분은 제조사가 관리해야 하는 항목입니다. 그렇더라도 술 한 잔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며, 일반적인 섭취량에서 취기를 느낄 정도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알코올을 완전히 피해야 하는 분들은 라벨 확인이 필요합니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극도로 부족한 경우, 종교적 이유로 알코올을 금하는 경우, 디설피람처럼 알코올과 반응하는 약물을 복용 중인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자세한 기준과 개별 제품 정보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안전나라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라벨에는 어떻게 표시될까요

「식품등의 표시기준」에 따라 제조·가공에 사용된 원재료는 많이 쓴 순서대로 표시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따라서 주정을 원료로 썼다면 원재료명에 ‘주정’으로 표기됩니다. 발효식초처럼 공정상 최종 제품에 알코올이 그대로 남지 않는 경우에도 원재료로서 표시하도록 안내한 사례가 있습니다.

표기 방식은 제품에 따라 ‘주정’, ‘에탄올’, ‘발효주정’, ‘주정(에탄올)’ 등으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니, 이 단어들이 보이면 같은 물질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주정이 들어간 빵을 먹으면 음주 측정에 걸리나요?

일반적인 섭취량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빵이나 발효 음료를 먹은 직후에는 입안에 남은 미량의 알코올이 호흡측정기에 잡힐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물로 입을 헹구고 잠시 뒤 재측정하면 수치가 사라집니다. 혈중알코올농도 채혈 검사에서는 검출되지 않습니다.

아이가 먹어도 괜찮을까요?

식품에 쓰이는 주정의 양은 매우 적고, 가열 공정에서 대부분 휘발되기 때문에 통상적인 섭취로는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알코올에 특별히 민감한 체질이라면 가열하지 않는 제품 위주로 라벨을 확인하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주정과 소독용 에탄올은 같은 건가요?

화학적으로는 같은 에탄올이지만 같은 제품은 아닙니다. 소독용 에탄올에는 마시지 못하도록 변성제를 넣은 제품(변성 알코올)이 있고, 공업용 합성 에탄올을 쓰기도 합니다. 소독용 제품은 절대 식품에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주정은 첨가물인가요, 원재료인가요?

둘 다입니다. 「식품첨가물의 기준 및 규격」에 수록된 품목이면서, 소주·식초처럼 제품의 주된 원료로 직접 쓰이기도 합니다. 어떤 목적으로 넣었느냐에 따라 지위가 달라집니다.

마무리

정리하자면 주정은 곡물이나 당류를 발효시켜 증류한 고순도 에탄올이며, 식품에 들어가는 이유는 살균과 보존, 잡내 제거, 식감 개선, 유효 성분 추출, 발효 보조 때문입니다. 이름 때문에 술이 연상되지만, 실제로는 합성 보존료를 대신해 식품을 안전하게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재료명에서 ‘주정’을 보셨다면 지나치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알코올을 반드시 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가열하지 않는 즉석식품 위주로 라벨을 한 번 더 확인하시는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