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의 하얀 겉면, 껌의 불투명한 색, 영양제 캡슐의 뽀얀 코팅. 이 흰색을 만드는 주인공이 바로 이산화티타늄(산화티타늄, E171)입니다. 그런데 이 첨가물은 2022년부터 유럽연합(EU)에서 식품 사용이 전면 금지됐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식약처는 지금도 착색료로 사용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같은 성분을 두고 왜 이렇게 판단이 갈리는지, 어떤 식품에 들어있고 얼마나 걱정해야 하는지 한 번에 정리해 드립니다.
목차
이산화티타늄이란? 식품을 하얗게 만드는 착색료
이산화티타늄(Titanium dioxide)은 화학식 TiO₂로 표기되는 흰색 분말 형태의 물질입니다. 식품첨가물로 쓰일 때는 착색료(색을 내는 첨가물)로 분류되며, 유럽에서는 E171이라는 번호로 관리됩니다. 국내 식품 표시에는 번호 대신 ‘이산화티타늄’ 또는 간략명 ‘산화티타늄’으로 적힙니다.
이산화티타늄의 역할은 단순히 흰색을 입히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빛을 강하게 반사하고 산란시키는 성질이 있어서, 식품에 넣으면 불투명하고 뽀얀 느낌(백탁)과 광택을 줍니다. 그래서 다른 색소의 발색을 선명하게 받쳐 주는 ‘바탕’ 역할로도 쓰입니다. 참고로 이 물질은 자외선 차단제(선크림)나 페인트, 화장품의 백색 안료로도 널리 쓰이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한 흰색 재료 중 하나입니다.
어떤 식품에 들어있을까
이산화티타늄은 ‘희고 깨끗한 색’이 필요한 가공식품에 두루 쓰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 사탕·젤리 — 특히 겉면이 하얗거나 딱딱한 껍질(당의)이 있는 제품
- 껌 — 불투명한 흰색 껌 표면
- 화이트초콜릿·제과류 — 더 하얗고 광택 있게 보이도록
- 건강기능식품·의약품의 정제·캡슐 코팅 — 흰색 불투명 외피, 빛을 차단하는 차광 목적
- 일부 소스·크림·뻥튀기 등 — 백색도를 높이는 용도
다만 국내에서 쓸 수 있는 범위는 해외보다 좁습니다. 뒤에서 설명하듯 식약처는 육류·어패류·채소·과일 같은 천연식품과 식빵·잼·유가공품 등에는 이산화티타늄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해외 기사에서 “가공육·유제품에도 들어간다”고 소개되는 사례가 국내 제품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내가 먹는 제품에 들어있는지 궁금하다면 포장 뒷면 원재료명에서 ‘이산화티타늄’ 또는 ‘산화티타늄’을 찾아보면 됩니다.
EU는 왜 이산화티타늄을 금지했을까
유럽의 금지 조치는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라, 과학적 재평가의 결과였습니다. 흐름은 이렇습니다.
2021년 5월,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이산화티타늄을 재평가한 뒤 “식품첨가물로 더 이상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핵심 근거는 두 가지였습니다.
- 나노입자 문제 — 식품용 이산화티타늄에는 지름 100나노미터(nm) 미만의 아주 작은 입자가 상당량 섞여 있습니다. 이 나노입자는 몸속에 축적될 수 있고, 흡수·분포 양상을 기존 방식으로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 유전독성(genotoxicity) 우려를 배제할 수 없음 — 유전독성은 DNA나 염색체를 손상시킬 가능성을 말합니다. EFSA는 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고, 그 결과 안전한 하루섭취허용량(ADI)을 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ADI를 설정할 수 없다는 것은 ‘얼마까지는 안전하다’는 선을 그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에 따라 EU는 관련 규정을 개정해 2022년 1월부터 시행, 6개월 유예를 거쳐 2022년 8월 7일 이후 식품첨가물로서의 사용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프랑스는 이보다 앞서 2020년부터 이산화티타늄이 든 식품 판매를 선제적으로 중단한 바 있습니다.
단, EU도 의약품에서는 사용을 계속 허용하고 있습니다. 알약을 코팅하는 데 이산화티타늄을 대체할 마땅한 성분이 없어, 당장 금지하면 환자에게 오히려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유럽 의약품청(EMA)의 판단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왜 아직 허용할까
EU의 금지 이후에도 식약처는 이산화티타늄을 식품 착색료로 계속 허용하고 있으며, 2024~2025년 기준으로도 사용을 중단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유는 규제 판단의 관점 차이에 있습니다. 식약처는 현재의 국내 사용 범위와 노출 수준을 볼 때 인체 발암·위해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국제 동향을 지켜보며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대신 국내에는 오래전부터 사용 대상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식품첨가물 공전에서는 이산화티타늄을 다음과 같은 천연식품·가공식품에는 쓰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습니다.
- 식육·어패류·채소·과일 등 천연식품
- 식빵, 잼류, 유가공품 등을 포함한 37개 품목
이는 신선도나 품질이 떨어지는 식품을 흰색으로 좋아 보이게 위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또한 건강기능식품에서는 정제·캡슐의 제피(코팅)에 차광(빛 차단) 목적으로만 쓸 수 있도록 용도를 좁혀 두고 있습니다.
한 가지 알아둘 점은, EU만 예외적으로 강경할 뿐 미국(FDA)·캐나다·영국·호주·뉴질랜드 등 다수 국가는 여전히 이산화티타늄을 식품에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EU가 금지했다 = 전 세계가 위험하다고 결론 냈다”는 아닙니다. 같은 데이터를 두고 규제기관마다 ‘불확실성을 어디까지 감수할 것인가’의 판단이 갈린 사례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걱정해야 할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산화티타늄은 급성 독성이 있어 당장 몸에 해를 끼치는 물질은 아닙니다. 소화관에서 대부분 흡수되지 않고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논란의 핵심은 ‘급성 위험’이 아니라, 나노입자가 장기간 쌓였을 때의 유전독성 가능성을 현재 과학으로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다는 불확실성입니다.
EU는 이 불확실성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으니 뺀다’는 쪽으로, 식약처를 비롯한 다수 국가는 ‘금지할 만큼의 확실한 위해 근거는 아직 없다’는 쪽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일상적인 섭취량이 즉각적 위험을 뜻하지는 않되, 굳이 챙겨 먹을 이유도 없는 성분이라는 점은 공통적입니다. 특히 성장기 어린이가 사탕·껌·과자를 통해 반복 노출되는 경우라면, 노출을 줄여 두는 편이 마음 편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이산화티타늄을 줄이고 싶다면
- 원재료명 확인하기 — 포장 뒷면에서 ‘이산화티타늄’ 또는 ‘산화티타늄’ 표기를 찾습니다. 착색료로 쓰였을 때 함께 ‘착색료’라는 용도명이 병기되기도 합니다.
- 과하게 하얗거나 광택 나는 가공식품 주의 — 유난히 새하얀 당의 사탕, 불투명한 흰 껌, 화이트초콜릿류가 대표적입니다.
- 영양제는 ‘무피막(무코팅) 정제’나 성분 표기가 투명한 제품 선택 — 캡슐·정제 코팅에 쓰이는 경우가 많으므로, 신경 쓰인다면 제피 성분을 확인합니다.
- 가공식품 자체를 줄이는 것이 근본책 — 이산화티타늄은 ‘보기 좋게’ 만드는 첨가물이므로, 자연식 위주 식단에서는 노출이 자연히 줄어듭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첨가물과 헷갈리지 마세요
가공식품 색·보존과 관련된 첨가물은 서로 역할이 다릅니다. 이산화티타늄이 ‘흰색을 입히는 착색료‘라면,
- 햄·소시지의 분홍빛을 유지하는 것은 착색료가 아니라 발색제입니다. 발암 논란이 함께 따라다니는 아질산나트륨(발색제)의 정체와 안전하게 먹는 법에서 그 차이를 정리했습니다.
- 라면·치즈의 노란색처럼, 합성이 아닌 천연 유래 착색료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노란색을 내는 비타민B2(리보플라빈)는 착색료이자 영양강화제로 쓰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산화티타늄이 든 과자를 먹었는데 괜찮을까요?
한두 번의 섭취로 급성 문제가 생기는 물질은 아닙니다. 대부분 흡수되지 않고 배출됩니다. 논란은 장기·반복 노출 시의 불확실성에 대한 것이므로,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되 습관적으로 많이 먹는 것은 줄이는 편이 좋습니다.
Q. 선크림·화장품에 든 이산화티타늄도 위험한가요?
이번 논란은 ‘먹었을 때(경구 섭취)’의 나노입자 유전독성에 관한 것입니다. 피부에 바르는 자외선 차단 용도는 평가 맥락이 다르며, 식품 금지가 곧 화장품 금지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Q. 라벨에 ‘E171’이라고 적혀 있나요?
E번호는 유럽식 표기입니다. 국내 제품에는 ‘이산화티타늄’ 또는 ‘산화티타늄’으로 표기되니 이 이름으로 확인하세요.
이산화티타늄은 ‘무섭게 들리는 이름’과 ‘실제 위해 수준’ 사이의 간극이 큰 대표적 첨가물입니다. EU의 금지는 예방 원칙에 따른 강경 조치이고, 국내는 사용 범위를 제한하며 신중히 지켜보는 단계입니다. 지나친 공포보다는, 라벨을 읽고 불필요한 노출을 줄이는 현명한 소비가 가장 현실적인 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