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봉지 뒷면을 보면 성분 이름은 없고 ‘산도조절제’라고만 적혀 있거나, 심지어 ‘산도조절제 2종’처럼 숫자가 붙어 있습니다. 무엇을 넣었는지 감추는 것처럼 보여 찜찜하지만, 이는 표시기준이 허용한 정식 표기 방식입니다. 산도조절제가 정확히 무엇이고, 왜 이름 대신 용도로만 적을 수 있는지, 그 안에 들어 있는 성분은 무엇인지 정리했습니다.
목차
산도조절제란 무엇인가
산도조절제는 특정한 하나의 물질 이름이 아닙니다. 식품의 산도(pH) 또는 알칼리도를 조절하는 식품첨가물을 통틀어 부르는 용도명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첨가물공전 총칙에서 첨가물을 쓰임새에 따라 31가지 용도로 나누고 있는데, 감미료·보존료·착색료와 나란히 놓이는 그 31가지 중 하나가 산도조절제입니다.
이 분류 체계는 2018년 1월 1일 시행된 식품첨가물의 기준 및 규격 전부개정고시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전에는 첨가물을 ‘화학적 합성품’과 ‘천연첨가물’로 나눴는데, 이 구분이 합성품은 나쁘고 천연은 좋다는 식의 오해를 키운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출신 대신 쓰임새로 나누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소비자가 라벨만 봐도 ‘이 첨가물을 왜 넣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됐습니다.
따라서 ‘산도조절제’라는 표기는 성분명이 아니라 역할 표시입니다. 뒤에서 보겠지만 그 자리에 실제로 들어가는 물질은 구연산일 수도, 젖산일 수도, 탄산수소나트륨일 수도 있습니다.
식품의 pH를 왜 굳이 조절할까
pH는 식품에서 맛 한 가지만 좌우하는 값이 아닙니다. 제조사가 산도를 붙잡아 두려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1. 맛의 균형
단맛만 있는 음료는 물리고 텁텁합니다. 여기에 신맛을 조금 더하면 단맛이 산뜻하게 정리되고 과일 향도 또렷해집니다. 탄산음료·젤리·사탕에서 산도조절제가 빠지지 않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2. 보존성
대부분의 부패 미생물은 중성에 가까운 환경을 좋아합니다. pH를 4.6 아래로 낮추면 상당수 세균의 증식이 억제되므로, 보존료를 쓰지 않고도 상하기 어려운 상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김치가 익을수록 잘 상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무방부제’를 내세운 제품이 의외로 오래가는 배경에는 이 산도 관리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방부제와 보존료의 관계는 식품 보존료란 무엇인가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3. 색과 산화 방지
깎아 둔 사과가 갈변하듯, 식품은 금속 이온과 산소를 만나면 색과 향이 무너집니다. 유기산 계열 산도조절제는 금속 이온을 붙잡아 두는 성질(킬레이트 작용)이 있어 통조림 과일이나 음료의 변색을 늦춥니다.
4. 조직감
잼이 굳는 것도, 치즈가 응고되는 것도, 반죽이 부푸는 것도 모두 pH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산을 더하는 쪽뿐 아니라 알칼리 쪽으로 되돌리는 물질도 산도조절제에 포함됩니다. 라면 면발 특유의 탄력과 노란빛이 알칼리제에서 나오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라벨에 ‘산도조절제 2종’이라 적히는 이유
식품등의 표시기준에는 [표 6]이라는 목록이 있습니다. 여기에 오른 첨가물은 명칭·간략명·주용도 가운데 하나를 골라 표시할 수 있습니다. 산도조절제로 쓰이는 품목 상당수가 이 목록에 있어서, 제조사는 ‘구연산’이라고 적어도 되고 ‘산도조절제’라고만 적어도 됩니다.
다만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용도로만 적을 때 소비자가 한 가지만 들어간 것으로 오인하지 않도록 개수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두 종류를 썼다면 ‘산도조절제 1, 산도조절제 2’ 또는 ‘산도조절제 2종’으로 구분해 표기합니다.
즉 뒤에 붙은 숫자는 사용한 원료의 가짓수일 뿐, 등급이나 위험도 순위가 아닙니다. ‘산도조절제 3종’이 ‘산도조절제’보다 몸에 나쁘다는 뜻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구연산이 라벨에서 이름을 잃고 용도명으로만 남는 과정은 구연산의 식품첨가물 표시 쪽에서 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산도조절제에는 어떤 물질이 있나
산도조절제로 지정된 품목은 유기산부터 알칼리제까지 폭이 넓습니다. 라벨에서 실제로 자주 마주치는 물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성분 | 맛·성질의 특징 | 주로 보이는 식품 |
|---|---|---|
| 구연산 | 가장 널리 쓰이는 기본 산미, 상큼하고 빨리 사라짐 | 음료, 사탕, 잼, 분말차 |
| 젖산 | 부드럽고 둥근 신맛, 발효로도 자연 생성 | 발효유, 김치, 소스, 절임 |
| 빙초산 | 아세트산 99% 원액, 식초의 신맛 성분 | 절임류, 소스, 조미식품 |
| 사과산 | 신맛이 늦게 올라와 길게 남음 | 사탕, 젤리, 스포츠음료 |
| 주석산 | 포도 유래, 유기산 중 신맛이 가장 강한 축 | 와인, 캔디, 베이킹파우더 |
| 탄산수소나트륨 | 알칼리 쪽으로 되돌림, 가스를 내며 부풀림 | 제과·제빵, 면류 |
| 수산화나트륨·수산화칼슘 | 강한 알칼리제, 가공 중 중화용으로 소량 사용 | 면류, 두류 가공품 |
| 인산염류 | 완충 능력이 커 pH를 일정하게 붙잡음 | 청량음료, 가공육, 면류 |
표에서 보듯 산도조절제는 산성 물질만 모아 둔 분류가 아닙니다. pH를 낮추는 쪽과 올리는 쪽이 모두 들어 있고, 목적은 언제나 ‘그 식품에 맞는 산도를 맞추는 것’입니다.
성분별로 더 알아보기
대표 성분은 각각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라벨에서 이름을 확인했거나 특정 성분이 궁금하다면 아래에서 이어 보시면 됩니다.
- 사과산 — 이름 그대로 풋사과에서 발견된 유기산입니다. 신맛이 천천히 올라와 오래 남는 성질 때문에 신맛을 강조하는 사탕과 젤리에서 구연산 대신 선택됩니다.
- 주석산 — 포도의 대표 유기산이며, 와인 병 바닥에 생기는 투명한 결정의 정체이기도 합니다. 제과에서는 크림 오브 타르타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합니다.
- 빙초산 — 식초와 같은 물질처럼 보이지만 농도가 99% 수준이라 원액은 위험합니다. 식용과 공업용의 차이도 함께 확인해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 젖산 — 운동할 때 생기는 ‘피로물질’로 오해받지만, 발효식품의 신맛을 만드는 바로 그 물질입니다.
- 구연산(식품첨가물) — 산도조절제라는 표기가 붙는 가장 흔한 성분으로, 신맛·보존·산화방지를 한 번에 담당합니다.
- 구연산 기본 정리 — 식품용과 청소용의 차이, 무수와 함수의 차이가 궁금하다면 이쪽입니다.
많이 먹어도 괜찮은가
산도조절제로 쓰이는 유기산 대부분은 원래 과일과 발효식품에 들어 있던 물질이고, 몸속에서 에너지 대사 경로를 따라 분해됩니다. 국제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JECFA)가 구연산이나 사과산처럼 일일섭취허용량(ADI)에 수치 제한을 두지 않은 품목이 있는 것도, 통상적인 사용량에서 문제가 관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신경 쓸 지점은 독성보다 산 자체의 물리적 자극입니다.
- 치아 부식 — 신맛이 강한 음료를 오래 머금거나 하루 종일 조금씩 마시면 법랑질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마신 뒤 물로 헹구고, 바로 세게 칫솔질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 속쓰림 — 위식도역류가 있는 분은 산도가 높은 음료에서 증상이 도드라질 수 있습니다.
- 알칼리제 원액 — 수산화나트륨 같은 물질은 가공 공정에서 중화용으로 쓰이는 것이지, 가정에서 다룰 재료가 아닙니다.
자주 묻는 질문
산도조절제는 방부제인가요?
아닙니다. 다만 pH를 낮춰 미생물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존에 도움이 됩니다. 보존료가 미생물을 직접 억제하는 물질이라면, 산도조절제는 환경을 바꾸는 쪽에 가깝습니다.
‘산도조절제 2종’이 ‘산도조절제’보다 나쁜가요?
아닙니다. 사용한 원료가 두 가지라는 뜻일 뿐입니다. 종류가 늘었다고 해서 총 사용량이 많아지거나 위해도가 커지는 것은 아닙니다.
천연 산도조절제도 있나요?
구연산·젖산·사과산·주석산은 모두 과일이나 발효 과정에 원래 존재하는 물질입니다. 다만 식품에 넣는 제품은 대개 발효나 합성으로 대량 생산하며, 2018년 이후 표시제도에서는 천연과 합성을 구분해 적지 않습니다.
산도조절제가 들어갔는데 신맛이 안 나요.
신맛을 내려고 넣은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색을 지키거나 조직감을 잡기 위해 극소량만 쓰는 경우, 또는 알칼리 쪽 성분을 쓴 경우에는 맛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이가 먹어도 되나요?
허용된 사용량 범위에서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다만 신맛이 강한 사탕이나 젤리를 장시간 물고 있는 습관은 치아 표면에 좋지 않으므로 그 부분만 신경 써 주시면 됩니다.
마무리
‘산도조절제’는 정체를 숨긴 이름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넣었는지를 알려 주는 용도명입니다. 뒤에 붙는 숫자는 가짓수이고, 실제 성분은 구연산·젖산·빙초산·사과산·주석산처럼 우리가 이미 과일과 발효식품에서 먹어 온 물질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라벨에서 특정 이름을 발견하셨다면 위 성분별 정리에서 이어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식품첨가물의 공식 기준과 표시 규정은 다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식품안전나라 — https://www.foodsafetykorea.go.kr/
- 식품의약품안전처 — https://www.mfds.go.kr/